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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력 6년 사내방송 아나운서, 요즘 쉬면서 뭐하냐면요

사내방송 전문가 최슬기 아나운서 인터뷰
인천국제공항과 KB증권 등에서 활약
지금은 '원없이' 쉬면서 새로운 방송 구상도

 

 

최슬기(31)씨는 사내방송 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경력 아나운서다. 처음 시작은 인터넷 방송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했다. 2년이 지나 인천공항 사내 아나운서로 2년, 그리고 KB증권에서 2년을 일했다. 공항에서 이용하는 시민들을 위해 안내방송이나 승객호출, 비상상황 등 각종 이슈에 투입됐다. 증권사에서는 KBS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사내 아나운서의 삶이란 어떨까. 우먼스플라워는 최 아나운서를 만나 사내방송 아나운서의 삶과 직업, 꿈에 대해 들어봤다. 

 

-어릴 때부터 꿈이 아나운서였나.

 

"그렇다. 어려서부터 줄곧 아나운서가 하고 싶었다. 물론 아주 잠깐, 의사가 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뺑소니 교통사고로 다쳤던 기억 탓이다. 병원에서 깨어난 것만 기억난다. 사고 자체의 기억이 아예 없어서 다행히 차에 대한 트라우마는 없다. 목격자에 따르면 차에 부딪혀 붕 떠올라서 머리부터 추락했다고 했다. 의식이 없었고 머리에 피가 가득 고였다고 했다. 생사가 왔다갔다한 순간이다. 실명의 위기를 겪은 적도 있다. 학교 영어 시간에 카드 게임을 하다가 짝꿍이 카드를 들어올리면서 내 눈에 크게 상처가 났다. 눈에서 물이 줄줄 쏟아져나오는 느낌이었다. 의사 말로는 1mm만 상처가 깊었어도 실명했을 거라고 한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일을 시작했는데. 

 

"이화여대 학보인 이대학보사 기자를 하면서 언론사 입사 준비를 시작했다. 졸업반이 되면서는 아나운서로 진로를 굳혔다. 2년 정도 공채 준비를 하다가 한 인터넷 방송사 프리랜서 아나운서로 제의가 들어왔다. 공채 준비를 더 할까 했지만, 제의를 받아들여 입사했다. 빨리 방송이 하고 싶었고, 당장 눈앞에 온 기회를 잡고 싶었다."

 

-인천공항 아나운서로 일하게 된 이유는. 어떤 일을 하나. 

 

"20대 중반, 인터넷 방송 아나운서로 내 꿈을 펼치고 있었는데 갑자기 회사가 공중분해됐다. 갑자기 백수가 되니 당황스러웠다. 날짜도 기억한다. 2015년 6월 12일 금요일이었다. 평소처럼 출근까지 했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감정이 북받쳐 올랐지만 그 감정을 티내지 말고 평소처럼 방송하려고 했다. 정규직 직원들은 미리 통보를 받은 눈치였다. 이것이 프리랜서의 설움인가 싶었다.

 

이후 인천국제공항에서 안내방송 아나운서를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 모습이 비디오로 전달되지는 않았지만, 정규직이라는 말에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개 국어로 방송을 해야 하는 점도 좋았다. 외고를 나와 중국어를 전공했고, 제2외국어로 일어를 배웠다. 외국어를 겸한 방송을 하는 것에 자신도 있었다."

 

-어떤 일을 했나.

 

"안내방송이라고 말하면 별 것 아닌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 일해보면 쉴 새 없이 업무가 쏟아진다. 우선 방송과 방송 사이 약 30초 정도 쉰다. 공항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알리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승객 호출, 미아, 노약자 실종, 비행기 결항, 지연부터 비행기와 관련된 내용을 계속해서 송출해야 한다. 가령,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베이징으로 출발하는 대한항공 304편이 현지공항 사정으로 인해, 30분 지연될 예정입니다'라고 말한다고 치자. 그러면 한국어 외에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반복해서 알려줘야 한다. 비행기가 지연된다면 그 이유도 알려줘야 한다. 특별히 전달받은 이유가 없을 때에는 해당 항공사에 직접 연락해 물어보기도 했다."

 

-근무 중 인천공항 테러 사건이 있었다고.

 

"테러는 아니고 '화장실에서 폭발물로 의심되는 물체가 발견된 상황'이 발생했다. 2016년의 일이었다. 테러 상황을 훈련만 했지, 실제 상황이 발생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모든 정보와 상황이 공항 방송실 무전기로 들어오는 '아비규환'의 상황이었다. 하지만 승객이 놀랄 수 있기에 방송실에 있는 나는 차분하게 방송을 해야 했다.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해 방송을 마쳤다. 상황이 종료되고 나니 큰 일을 한 것 같았다. 미국 뉴욕에서 9.11테러 당시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 방송을 전하던 외신 뉴스 진행자의 모습이 생각나기도 했다."

 

-인천공항에서 2년을 근무했는데. 

 

"인천공항에서 일한 것은 보람되고 재밌었지만, 야간 교대근무로 약간은 지치고 또 답답했다. TV에 나오지 않는 점도 아쉬웠다. 정규직만 되면 마냥 행복할 것 같았는데 우울증이 오기도 했다. 그때 내 마음을 읽었는지, 어머니께서 '백수가 되도 좋으니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라'고 권유해 주셨다. 그래서 이직했다."

 

-KB 증권 방송으로 이직한 이유는.

 

"겉으로 보이는 조건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2년 계약직에다 인천공항 때보다 급여도 더 작았다. 하지만 KBS 뉴스에 짧게 출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안내방송을 하면서 영상 출연에 대한 갈증이 컸다.

 

하지만 사내방송은 아나운서가 PD 역할까지 해야 한다. 좋게 말하면 멀티플레이어고, 박하게 말하면 열악한 제작 환경이다. 편집부터 대본까지 내가 다 맡아서 '아나듀서'(아나운서+프로듀서)로 일해야 했다. 그 덕분에 음향과 방송효과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일에 지친 사원들이 사내방송을 시청하는 아침 10분만이라도 즐겁게 해주고 싶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 할로윈 기념으로 마녀 모자랑 마녀 망토를 입고 방송을 기획하기도 했다."

 

◇'죽음이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는 말에 공감...삶에 최선 다해

 

-요즘 근황은.

 

"지금은 방송을 따로 하지는 않는다. 계약기간을 마치고 쉬면서 초심으로 돌아가 스터디그룹을 하고 또 연습을 하고 있다. 또한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 일반인 대상으로 스피치 강의를 한다. 그리고 '아낌없이' 쉰다. 한 직장에서 2년씩, 6년을 쉴 새 없이 일했다.

 

사실 아나운서 지망생은 공채 준비를 하기 전까지 직장에 오래 있는 편이 아니다. 나의 경우 일을 시작하고서는 6년간 공채 준비를 따로 못했지만, 주어졌던 일에 할바를 다 하면 자연스레 기회가 온것 같기도 하다. "

 

-향후 계획은. 

 

"어릴 때 죽을 고비를 넘긴 덕분에 매사에 그리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스티브 잡스가 남긴 '죽음이 인간에게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극단적일 수 있겠지만, '내일 내가 죽는다면?' 이라는 가정을 해보는 것이 한 번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죽음 앞에서 사람은 겸손해지고 성장할 수 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고, 당장 눈 앞에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 요즘 스터디그룹에서 함께 공부하는 동생들이 실력이 늘었을 때도 뿌듯하다. 그들의 모습에서 열정과 힘을 얻는다. 지난 6년 쉼없이 달려왔는데 내 자신도 돌아보고 있다. 새로운 모습으로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모습으로 인사드리고 싶다."

 

우먼스플라워 장채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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